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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적지

고조선 역사의 시작점

고조선은 중국의 황하문명과 겨루면서 성장하다가 중앙권력이 쇠퇴하면서 중앙권력에 대항하는 제후 세력들이 생겨납니다. 즉 천왕이 아닌 주변 제후들은 중앙권력이 쇠퇴하는 틈을 타서 천왕 지위를 차지합니다. 이것이 나라 명칭의 변화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면, 조선은 조선인데 천왕이 다른 출신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시대를 기자 조선, 위만 조선이라 부릅니다. 또 중앙권력에 대항해 각 부족들이 독자적으로 왕을 칭하며 자기 국가르 ㄹ세움으로 써 열국이 난립되고 결국 조선은 몰락하고 북부여가 그 주도권을 잡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고구려에게 주도권이 넘겨집니다. 즉 새로운 주도세력이 기존 권력 부족을 제압하고 그 문화를 계승하면서 부여로 , 고구려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조선이 멸망한 직후에 부여가 들어선 것은 아닙니다. 고조선은 고조선대로 유지되고 새롭게 일어난 부여는 부여대로 융성하다가 부여가 고조선을 대신하였고 다시 고구려가 건국되어 부여와 양쪽 체제가 공존하다가 고구려가 맹주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 가야도 그 나름대로 체제를 형성합니다. 결국 한반도와 만주에는 천손의 영향을 받아 언어와 문화가 거의 유일한 세력, 즉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주된 국가는 물론 고구려입니다. 이때 분열되어 있던 중국이 수나라로 통일되면서 , 고구려는 중국에게 강력한 압박을 받습니다. 중국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서 고구려는 백제와 동명을 맺고, 다시 백제는 일본과 동맹을 맺습니다. 그러자 고립된 신라는 수나라와 동맹을 맺는 국제질서가 형성됩니다. 여기서 내부적으로 참신하고 창조적인 젊은 이들의 에너지를 받은 신라가 주도세력으로 새롭게 나서서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고구려 멸망 후 발해 건국

고구려 멸망 후에 그 후예들이 발해를 건국해 냄으로써(698년) 우리 민족은 발해와 신라라고 하는 남북국 시대를 맞이합니다. 발해 사람들은 신라가 당나라와 결탁하여 고구려 멸망에 일조했다는 사실 때문에 신라에 거부감이 있었고, 신라는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문화 수준을 높였지만 같은 민족인 발해와는 교류가 미약했습니다. 그렇다고 두 나라가 심각한 적대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교류가 뜸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신라가 분열되어 후삼국으로 나뉘고, 발해가 이민족에 의해 멸망하다 보니 발해의 유산과 영토가 우리 민족에게 계승되지 않았습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936년) 발해 유민의 일부가 고려에 유입되었지만 고려 또한 그 영역이 산라의 영토에서 조금 북상했을 뿐 발해의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자 우리 민족사는 신라, 고려가 중심축이 되고 발해는 민족사에서 잃어버린 역사가 되었습니다. 

고려는 항전의 역사

거란족과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도 끝까지 싸웠습니다. 몽고족이 전 세계를 지배했을 때도 강화도까지 천도해서 끝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의지가 매우 깊기 때문입니다. 9차에 걸친 몽고 침략을 받아 결국 항복하고 제후국이 되었을 때 우리는 민족사적 자손심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몽골을 격퇴함으로써 곧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면서(1392년) 우리는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중국 명나라의  주변국이 되었습니다. 조선은 일견 독자성을 상실한 것 같지만 말과 문자를 계승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고, 여러 가지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등 민족의 주체성을 유지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중세사를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까지도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그 이전 황웅의 역사를 실증주의란 이름으로 신화라 해서 곰과 마늘과 쑥을 먹는 얘기 정도로 남기고 전체의 역사를 없애버렸다는 점입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면면히 흐르는 현재입니다. 그 역사가 과거에 정통성이 있다 해서 지금도 반드시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지금 정당성이 있다고 해서 과거에도 반드시 옳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와 사회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계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