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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
조선족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법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흐름만으로 계속 단일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두만강은 바다에 이르는 중간중간에 수만 갈래의 강물과 강줄기가 합류되어 두만강을 형성한다. 그런 것처럼 우리 민족의 시원이 한 선진문명을 가진 부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만주지역과 한반도에 이르면서 그 땅에 있었던 토착세력인 수많은 씨족 그리고 부족 등 이런 크고 작은 문화가 합류되어 오늘의 우리 민족사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단군을 말하는 것은 민족상의 시원이라는 것이지, 꼭 단군조선만이 우리 역사라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해서 예맥이라 불리는 사람들, 동예라 불리는 사람들, 마한, 진한, 변한이라 불리는 사람들, 부여라 불리는 사람들, 옥저라 불리는 사람들, 수많은 지류들이 합해지고, 온갖 토착부족들이 결합해서 오늘의 우리 민족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구려를 이해하거나 또는 삼국시대를 이해할 때 지금과 같은 사회성격으로 그때를 이해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상고사를 이해할 때 오늘같이 하나의 지역사회가 아주 단일하게 통합되어 있는 그런 관점으로 고대사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조선에 대해서 그때 무슨 그런 왕국이 건설될 수 있었겠느냐며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고조선을 만주와 한반도를 통치한 단일한 통일국가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 다 오늘의 관점에서 그때를 바라보는 것으로 옳지 않다.

따라서 역사의 시원이 동일하게 출발한다 하더라도 갈라져서 여러 민족을 형성하기도 하고, 또 오늘날 하나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 부족의 단일한 성장이 아니라 각 토착세력의 만 갈래 물줄기가 결합해서 오늘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든, 만주족이든, 일본민족이든, 몽골족이든, 그 갈라지기 이전 세월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문화적 동질성이 있고 어떤 신화의 공통도 있고, 언어적 공통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민족과 다투더라도 문화적으로 볼 때는 같은 물줄기의 갈라짐에 속한다. 또한 여러 토착세력이 비록 후진 문명이긴 하지만 그들 고유의 문화가 고조선의 문화와 결합하여, 온갖 색깔이 섞이면서 오늘날 우리 민족 문화의 색깔이 된 것이지 하나의 단일한 색깔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흘러내려온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민족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민족 문화를 이해하는 법

이런 관점에서 우리 민족사를 이해한다면 우리 민족의 뿌리는 중국의 아류나 지류가 아니라 중국 민족의 뿌리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립성을 갖는 게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족사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로 오면서 우리는 중국문화와 많은 교류를 했다. 그래서 출발점은 달랐지만 같은 뿌리를 두고 갈라진 민족들보다도 이웃함으로 해서 문화적 교류가 아주 많았다. 뿌리의 바탕이 되는 오랜 문화에서 우리가 더 서진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삼국 이후로는 중국문화가 우리 문화보다 더 높았기 때문에 그 많은 중국의 선진문화가 우리 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문화 속에 중국의 문화, 한족의 문화가 많이 배어있다. 특히 조선조 이후에는 이 문화의 정체성, 문화의 독창성이 훼손될 만큼 문화이식이 심했다. 이러다 보니 우리 민족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쯤으로서 이해하게 되어 중국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민족의 정체성, 무화의 정체성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우리 문화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중국 변방의 작은 나라로 있으면서도 독립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뿌리가 다른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남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서양문화

또 우리는 개항 이후 서양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남북이 분단된 이후, 서양 문화가 남한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서양문화가 막대하게 영향을 준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 찾기 어려울 정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특히 종교는 문화 중에서도 아주 핵심이기 때문에 잘 변하지 않는다. 영국은 인도를 300년 지배했는데도 종교에는 영향을 못 주고, 일본도 서양 문화를 일찍 받아들이고 매우 서양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일본사회에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안 된다. 그런데 왜 남한 사회에서는 6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종교까지도 기독교 문화가 주류를 형성할 만큼 이렇게까지 바뀌었을까? 우리가 조선조 500년 동안에 중국 문화로 바뀐 그 변화보다도 이 50년 동안에 변한 게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나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왔을 때는 남의 나라에 온 것보다 더 어리둥절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바로 분단 이후 남한사회가 문화적으로 미국의 거의 식민지와 같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문화가 미국이나 유럽 문화와 다른 것은 우리 고유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물감이 타졌지만 그 본래의 색깔인 우리의 색깔을 유지하고, 그들과 다른 독립적인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중국과 다른 것은 이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 부분이 중국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중국과 많은 문화적 공통점을 갖는 것은 바로 삼국시대 이후 중국과 많은 문화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서양문화와도 다른 것은 동양문화의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문화 속에 서양 문화적인 많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짧은 시간 내에 문화적 교류라기보다 식민지 문화이식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급속한 문화이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모든 것을 현실적 토대로 하여 오늘 우리에게 닥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이 새로운 시대의 핵심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