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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볼만한 개봉 영화가 없는 것 같아서 올해 아직 극장을 가보지 못했는데 반가운 영호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의 어릴 때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슬램덩크 극장판으로 2023년도의 첫 관람 영화로 시작해 보았습니다. 30년 전인 90년대 초반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일 때에 전국 제패를 꿈꾸던 빨간 유니폼의 북산고 농구부 선수들의 멈추지 않는 도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슬램덩크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슬램덩크 포스트 by 네이버

 

그때 그시절

개봉일은 2023년 1월 4일이고 감독은 실제 슬램덩크 만화의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입니다. 원작이 우리나라에 연재가 된 때는 90년 초 한창 국내에 농구의 인기가 엄청났던 시절이었습니다.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서장훈, 허재, 현주엽 등 걸출한 농구 스타를 배출했던 KBL 프로농구의 전신이었던 농구대잔치의 인기,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부의 연고전 경기, 장동건이라는 신인의 대배우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든 데뷔 작품이었고 농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 '마지막승부'의 폭발적인 인기. 그리고 여기에 기름을 부어 농구 팬데믹 시대의 마침표를 찍은 슬램덩크라는 연재만화가 있었습니다. 당시 매주 한 번 발행되던 소년챔프라는 만화 잡지에 일부 연재되었는데 중고등학생 할 거 없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안 읽어본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아직도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이름들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이니 이 작품의 몰입도나 재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항상 그 친구가 정해진 요일에 소년챔프 만화잡지를 사서 등교하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반 전체 아이들이 그 만화책 마지막 페이지에 연재되어 있던 슬램덩크를 돌려봤던 생각이 납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이른 아침 조조영화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이 앉아 있어서 슬램덩크의 인기가 그 당시를 소환하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 소통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 공간에 앉아 그 시대에 느꼈던 감정을 지금에 다시 공감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실제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과 연출에 참여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만화와 달리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어 아주 새로웠습니다. 원작인 슬램덩크의 내용은 주인공 5명이 그려가는 인간 군상극임에도 불구하고 송태섭이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를 나타내주는 묘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이건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백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과 채치수의 가정사 정도만 원작에서 보여줬을 뿐 생활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송태섭의 가족들 비하인드 스토리와 어린 시절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극장판을 보고 나니 혹시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이런 과거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영화는 마치 후속편의 스포일러를 흘리듯이 중학교 1학년때 송태섭과 정대마의 만남, 산왕 정우성의 이야기, 송태섭의 엄마 이야기 등 등을 슬쩍슬쩍 보여줍니다. 이것은 관객의 시선을 다른 지점으로 보내고 예전의 기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까지 분명하게 되살린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슬램덩크를 보여주는 것만 같은 기발한 연출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감독이 후속 편을 미리 계획해 두고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속 편에는 어떤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올지 벌써 기대됩니다. 농구에서는 선수들의 포지션을 등번호로 표시하는데 제목인 더 퍼스트가 의미하는 1번은 포인트가드인 송태섭의 등번호를 의미하고 있는 것과 그가 남원 가드가 되기 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야기하는 더 퍼스트는 관객들이 이런 완성도 있는 작품은 처음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원작을 뛰어넘는 구성과 작화

송태섭의 이야기는 원작에서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스토리를 바탕으로 언제나 강적이었던 상황공고의 경기를 통해 각자 멤버들의 중요한 순간들과 함께 전체 시리즈를 본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오키나와에 살던 송태섭이 겪은 두 차례의 고통과 오키나와에서 가나가와현으로 이사를 간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만큼 잘 짜인 스토리에 디테일한 그림과 감동까지 어우러진 최고의 애니메이션 작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스타일의 슬램덩크에서 원작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그림을 보고 충격적이었는데 인물들 각각의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감정을 표현해 내는 표정과 운동화, 운동복의 살아 있는 듯한 질감과 색감, 선수들의 몸에 흐르는 땀방울까지 확실히 디테일함이 더해져서 완성도가 최고였습니다. 과거에 나왔던 몇 편의 슬램덩크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연기하는 톤도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리얼했습니다. 예전 TV애니메이션 때는 캐릭터들의 목소리가 전체적으로 하이톤에 오버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극장판은 세련된 요즘 영화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독은 농구코트 위에 있는 캐릭터들의 느낌을 더 중요시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성우들에게 과장된 표현 없이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사실적인 경기 장면을 그리기 위해서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발을 움직이는 방법이나 공을 던지는 순간의 몸동작, 슛하는 순간의 팔모양 등 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수집해서 실제 농구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이번 작품의 성공에 숨어 있는 일등 공신인 것 같습니다. 아울러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산왕공고와 경기 중 나오는 영화 배경 음악은 일본 인기 록밴드인 버스데이와 10피트가 참여했다고 합니다. 추억을 소환할 기대를 가지고 극장을 찾았는데 꽤 감동적으로 영화를 감상했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한 시간이라 더욱 의미 있는 영화였습니다.